생명과학 · 유전자

세균만의 무기인 줄 알았던 유전자 가위, 곰팡이 속 '판저'가 보여준 가능성과 숙제

과학 매거진 · 읽는 시간 약 14분

진핵생물 유전체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소형 유전자 가위 판저가 새롭게 발굴되었습니다. 기존 효소보다 분자 크기가 작아 체내 전달에 유리하지만, 실제 치료제로 쓰이기까지는 낮은 활성과 면역 반응 등 극복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많습니다.

이 글은 최신 과학 연구를 쉽게 풀어 쓴 일반 정보 글입니다. 연구 결과는 후속 검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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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방어 체계에서 시작된 유전자 교정 도구의 한계

유전자 교정 기술은 생명체의 설계도인 DNA를 원하는 위치에서 정밀하게 고치는 기술입니다. 현대 생명과학은 1세대 아연손가락 핵산분해효소(ZFN) 개발로 유전자 교정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2세대 도구인 탈렌(TALEN)이 등장하며 표적 인식 능력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뒤이어 3세대 기술인 크리스퍼(CRISPR-Cas9) 가위가 등장하여 생명과학계 전반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현재 널리 쓰이는 크리스퍼 시스템은 세균과 고세균 같은 미생물의 면역 체계에서 유래했습니다. 세균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정교한 방어 무기를 진화시켰습니다. 과거에 침입한 적의 유전 정보를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침투했을 때 정확히 잘라냅니다. 연구자들은 미생물의 이러한 생체 방어 기전을 응용하여 유전자를 편집하는 도구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미생물에서 빌려온 단백질을 인간 세포에 적용할 때는 태생적인 난관이 뒤따릅니다. 원핵생물인 세균과 진핵생물인 인간 사이에는 수십억 년에 달하는 진화적 격차가 존재합니다. 세균은 세포핵이 없는 단순한 구조 안에서 살아갑니다. 반면 인간을 비롯한 진핵생물은 유전 물질을 핵막으로 둘러싸 안전하게 보관합니다.

또한 인간 DNA는 히스톤 단백질에 감겨 뉴클레오솜이라는 응축된 구조를 형성합니다. 세포핵이 없는 단순한 환경에 적응한 세균 효소는 인간 세포핵 내부 환경과 완벽히 들어맞지 않습니다. 더욱이 미생물 유래 단백질을 체내에 투여하면 인간 면역계가 이를 이물질로 인식합니다. 면역 세포가 활성화되거나 혈중 항체가 형성되어 세포를 공격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널리 쓰이는 SpCas9 효소는 단백질 분자 크기가 매우 거대합니다. 분자량이 약 160 kDa에 달해 환자의 세포 안으로 안전하게 집어넣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한계와 면역 부작용은 질환 치료 현장에서 늘 거대한 걸림돌이었습니다. 이에 과학자들은 인간과 세포 구조가 유사한 진핵생물 내부에서 독자적인 가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거대 유전체 데이터와 머신러닝이 포착한 새로운 절단 효소

진핵생물의 방대한 유전체 속에서 새로운 DNA 절단 효소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세계 각국이 분석해 등록한 공공 유전 정보 저장소에는 수십억 쌍의 염기서열이 쌓여 있었습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이 작업에서 출발점이 된 것은 TnpB 단백질이었습니다. TnpB는 세균의 이동성 유전자 안에 들어 있는 원초적인 DNA 절단 효소입니다.

TnpB는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RNA의 안내를 받아 특정 DNA 가닥을 끊어내는 재능을 지녔습니다. 연구진은 고대 진화 과정에서 이 TnpB 유전자가 진핵생물로 건너갔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진핵생물 고유의 유전자 구조를 지니면서 TnpB의 촉매 부위를 보존한 서열을 전산으로 추적했습니다. 대규모 비교 분석을 통해 특정 곰팡이와 단세포 조류 유전체에서 유력한 후보를 찾아냈습니다.

그 효소가 바로 판저라고 명명된 미지의 단백질군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서열 정보만으로는 이 단백질이 실제로 DNA를 자를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아미노산 사슬이 세포 안에서 어떻게 입체적으로 접혀 기능을 수행하는지 밝혀야 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해 준 도구가 바로 머신러닝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이었습니다.

신경망 모델을 이용해 판저 단백질의 3차원 입체 구조를 정밀하게 계산했습니다. 계산 결과 판저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RNA와 결합할 수 있는 오목한 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표적 DNA 이중 나선을 감싸 쥐고 끊어낼 수 있는 촉매 주머니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전산 분석을 통해 실제 분자 가위로 작동할 수 있는 입체적 토대를 사전에 확인한 것입니다.

컴퓨터 구조 예측 기술은 컴퓨터 화면 속 서열 정보를 실제 작동하는 분자 가위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전산 분석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진은 곧바로 시험관 실험을 통한 실증에 착수했습니다. 고순도로 정제한 판저 단백질과 길잡이 RNA, 그리고 표적 DNA를 시험관에 함께 넣었습니다. 시험 결과 길잡이 RNA가 지정한 정확한 위치에서 DNA 가닥이 정확히 절단되었습니다. 컴퓨터가 예측한 분자 가위 기능이 실험실 생화학 반응으로 명백하게 입증된 순간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이어 배양된 인간 세포에 판저 단백질과 길잡이 RNA를 도입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단백질이 인간 세포핵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핵 국소화 신호(NLS)를 단백질 끝에 달아주었습니다. 판저는 인간 세포핵 안에서도 표적 유전자를 찾아내어 절단 반응을 수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방대한 유전체 분석과 머신러닝 예측, 정밀 생화학 검증이 합쳐져 새로운 가위를 발굴해 냈습니다.

스스로 이동하는 유전자에서 갈라져 나온 독자적 진화 경로

판저의 발견은 자연계에서 유전자 가위가 어떻게 갈라져 나왔는지를 밝혀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분자 계통학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유전자 절단 시스템은 본래 전이 인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이 인자는 스스로 자리를 옮겨 다니며 유전체 안을 이동하는 원초적인 핵산 조각입니다. 흥미롭게도 현재 널리 쓰이는 유전자 가위들은 단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2형 크리스퍼의 대표 주자인 Cas9 효소는 고대 전이 인자의 IscB 단백질에서 유래했습니다. 반면 5형 크리스퍼 효소인 Cas12와 진핵생물의 판저는 모두 TnpB 단백질에서 분화했습니다. 자연계에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조상 단백질을 뿌리로 둔 두 갈래 절단 체계가 존재했던 셈입니다. 판저의 뿌리가 된 TnpB는 수십억 년 전부터 작은 분자량으로 핵산을 절단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핵심

판저는 세균의 면역 단백질이 아니라 고대 이동성 유전자에서 유래하여 진핵생물에 정착한 독립적인 절단 효소입니다.

고대 지구 환경에서 원핵생물의 TnpB 유전자가 바이러스 등을 통해 초기 진핵생물로 옮겨갔습니다. 서로 다른 생물 문턱을 넘어 유전 정보가 이동하는 수평적 유전자 전이가 일어난 것입니다. 진핵세포 안으로 들어간 외래 유전자는 도태되어 사라지지 않고 숙주 유전체에 안착했습니다. 이후 수억 년의 세월 동안 진핵세포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독자적인 돌연변이를 축적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곰팡이와 조류 등 다양한 진핵생물에서 발견되는 판저 단백질로 진화했습니다. 반면 원핵생물에 계속 남아 있던 TnpB는 세균의 면역 방어 기전과 결합하여 대형 Cas12로 진화했습니다. 동일한 조상 유전자가 한쪽은 세균 면역 무기로, 다른 한쪽은 진핵생물 내부 효소로 갈라진 것입니다. 이처럼 판저는 진핵생물 내부에서 독자적인 진화 궤적을 밟아온 특별한 유산입니다.

진화적 계통을 추적하는 작업은 새로운 분자 도구의 생화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바탕이 됩니다. 진핵생물 유전체 속에서 살아남은 판저는 RNA를 길잡이로 쓰는 효소가 생명계에 널리 퍼져 있음을 증명합니다. 미생물에만 한정되었던 유전자 가위의 기원이 진핵생물 전체로 확장되며 생물학적 시야를 넓혔습니다.

20초 요약 영상

표적 인식 서열을 찾고 DNA를 끊어내는 정밀한 생화학 기전

판저가 특정 유전자를 찾아내어 절단하는 과정은 고도로 조율된 생화학 반응을 따릅니다. 이 시스템은 판저 단백질 본체와 길잡이 역할을 맡는 오메가 RNA(ωRNA)로 구성됩니다. 판저 단백질은 단독으로 존재할 때는 촉매 활성을 띠지 않는 비활성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오메가 RNA와 결합하여 복합체를 이루면 입체 구조가 안정화되며 절단 장치가 준비됩니다.

세포핵 속으로 들어간 복합체는 수십억 쌍의 염기서열 사이를 이동하며 목표 지점을 탐색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찾아내는 표지판이 바로 표적 인접 모티프(TAM)입니다. TAM은 세균 유래 가위가 원형스페이서 인접 모티프(PAM)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목표 유전자 바로 옆에 위치한 특정 염기 배열을 인식하여 단백질이 그 자리에 멈춰 서도록 돕습니다.

판저 단백질이 TAM 서열을 인지하고 결합하면 단단히 꼬여 있던 DNA 이중 나선이 국소적으로 풀립니다. 나선이 풀리면서 안쪽에 감춰져 있던 염기들이 외부로 노출됩니다. 이제 오메가 RNA의 안내 서열이 풀려난 DNA 단일 가닥과 짝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아데닌은 티민과 결합하고 구아닌은 사이토신과 수소결합을 맺으며 안정적인 결합 쌍을 이룹니다.

길잡이 핵산과 표적 염기가 정확히 맞물리는 순간 단백질 내부의 절단 기능 부위가 열리며 반응이 시작됩니다.

RNA와 DNA 가닥이 오차 없이 완벽하게 결합하면 단백질 내부의 RuvC 유사 절단 부위가 깨어납니다. 활성화된 절단 부위는 노출된 DNA의 인산 골격을 차례대로 끊어냅니다. 그 결과 두 가닥의 뼈대가 모두 잘려 나가는 DNA 이중 가닥 절단(DSB)이 발생합니다. 판저는 길잡이 서열과 일치하는 목표 지점만을 찾아 정밀하게 절단 반응을 유도합니다.

DNA가 절단되고 나면 세포는 손상된 부위를 복구하기 위해 자체 수리 기전을 작동시킵니다. 잘려 나간 끝부분을 단순히 이어 붙이는 비상동 말단 연결(NHEJ)이 대표적인 복구 경로입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개의 염기가 더해지거나 빠지면서 질병 유발 유전자가 기능을 잃고 비활성화됩니다. 반대로 정상 유전자 조각을 함께 제공하면 상동 재조합 복구(HDR)를 통해 정확한 서열로 교체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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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분자 크기가 제공하는 단일 전달체 적재의 공학적 이점

유전자 가위 기술이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약물로 쓰이려면 체내 전달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절단 정밀도를 지녔더라도 표적 장기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현재 임상 연구에서 가장 안전성이 입증된 운반체는 아데노 부속 바이러스(AAV)입니다. AAV는 자체 병원성이 낮고 인체 내 다양한 조직으로 유전 물질을 안전하게 전달합니다.

하지만 AAV에는 치명적인 물리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바이러스 껍질 내부의 공간이 협소하여 약 4.7 kb 이상의 유전 물질을 포장할 수 없습니다. 이 적재 용량의 한계는 기존 유전자 가위를 전달하는 데 막대한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어 온 SpCas9 단백질은 분자량이 약 160 kDa에 달합니다.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 서열 길이만 약 4.1 kb에 이릅니다.

여기에 효소 발현을 조절하는 부위와 길잡이 RNA를 더하면 4.7 kb 한계를 훌쩍 넘어버립니다. 이 때문에 기존에는 유전자 가위와 길잡이 RNA를 두 개의 바이러스에 나누어 담아야 했습니다. 하나의 세포에 두 바이러스가 동시에 들어가야만 절단 효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그 결과 전달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환자에게 투여해야 하는 바이러스 총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바이러스 투여량이 많아지면 간 독성이 발생하거나 치명적인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위험이 커집니다. 또한 바이러스를 대량 생산하는 데 따르는 경제적 부담도 매우 컸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달체 하나에 모든 유전 물질을 담을 수 있는 소형 유전자 가위의 등장은 생명공학계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핵심

판저는 분자량이 기존 가위의 절반 수준으로 작아 단일 바이러스 전달체 안에 모든 교정 구성 요소를 온전히 담을 수 있습니다.

판저는 이러한 전달체의 크기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분자적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판저 단백질은 400~60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자량은 60~70 kDa에 불과합니다. 단백질 유전자 서열 길이 역시 약 1.5~1.8 kb 수준으로 매우 짧습니다. 기존 가위 단백질과 비교하면 분자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입니다.

크기가 작아진 덕분에 단 하나의 AAV 입자 안에 절단 효소와 길잡이 RNA, 조절 인자를 모두 실을 수 있습니다. 단일 전달체 탑재가 가능해지면 바이러스 투여 총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환자의 면역 부담과 체내 독성 위험을 낮추는 동시에 치료제 생산 공정과 비용도 줄어듭니다. 아울러 비바이러스성 지질 나노입자(LNP)를 이용할 때도 전령 RNA의 길이가 짧아 적재 효율이 뛰어납니다.

복잡한 진핵세포 염색질 환경에서 마주하는 물리적 장벽

판저가 작동해야 하는 인간 세포핵 내부는 단순한 액체 상태가 아닙니다. 수많은 거대 분자들이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어 매우 혼잡한 생물물리학적 환경을 이룹니다. 인간 유전체 DNA는 길게 풀려 있지 않고 단백질과 결합하여 고차원 구조를 만듭니다. 기본적으로 DNA 이중 나선은 히스톤 단백질을 감싸며 뉴클레오솜이라는 기본 단위를 형성합니다.

이 뉴클레오솜들이 다시 꼬이고 뭉쳐 3차원의 복잡한 염색질 그물망을 이룹니다. 유전자 발현이 억제된 이질염색질 부위는 매우 단단하게 뭉쳐 있어 외부 분자의 접근을 완벽히 차단합니다. 과거 일각에서는 판저가 진핵생물 유래이므로 인간 세포핵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히스톤과 뉴클레오솜 장벽을 저절로 통과할 것이라는 추측이었습니다.

그러나 진핵생물 유래라는 이유만으로 세포핵 내 이질염색질 장벽을 자유롭게 통과한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과도한 단정입니다. 곰팡이나 조류 같은 하등 진핵생물의 핵 환경과 인간 세포의 고차원 염색질 구조 사이에는 거대한 진화적 격차가 존재합니다. 인간 세포의 히스톤 화학적 변형과 후성유전학적 응축 기전은 단세포 진핵생물보다 훨씬 정교하고 견고합니다.

실제 세포 내 실험에서도 단단히 뭉친 염색질 영역에서는 판저의 표적 접근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습니다. 닫힌 염색질 영역에 표적이 위치한 경우 절단 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한계도 관찰되었습니다. 기존 세균 유래 가위와 마찬가지로 판저 역시 단단한 뉴클레오솜 구조를 스스로 풀어헤치지는 못합니다. 진핵생물 출신이라는 배경이 염색질 장벽을 무조건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질병 유전자를 교정하려면 염색질 풀림을 돕는 보조 단백질을 결합하는 등의 후속 연구가 필요합니다. 염색질 완화 인자를 판저와 함께 설계하거나 후성유전학적 개변을 유도하는 공학적 시도가 뒤따라야 합니다. 판저가 인간 세포핵 내부에서 어떻게 확산하고 표적을 찾아내는지 규명하는 물리화학적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야 합니다.

낮은 초기 활성과 면역 반응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과제

판저가 차세대 유전자 교정 도구로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치료제로 쓰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관은 낮은 DNA 절단 효율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단백질 공학적 개량을 거친 SpCas9은 인간 세포에서 70% 이상의 절단 효율을 나타냅니다. 반면 자연 상태의 곰팡이나 조류에서 갓 분리해 낸 야생형 판저의 초기 절단 효율은 10~20%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낮은 효율로는 환자의 몸속에서 유의미한 질병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절단 효율이 떨어지면 원하는 치료 수준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양의 전달체를 체내에 투여해야 합니다. 이는 환자의 체내 독성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연구진은 단백질 표면의 전하를 조절하거나 오메가 RNA와의 결합 부위를 강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남긴 원초적 효소를 환자 치료에 안전하게 쓰기 위해서는 철저한 성능 개량과 안전성 검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철저히 검증해야 할 요소는 비표적 절단 부작용입니다. 길잡이 RNA와 염기서열이 비슷한 엉뚱한 DNA 부위를 자르면 정상 유전자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암 억제 유전자가 손상될 경우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여 종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전체 유전체를 정밀하게 해독하는 전장 유전체 분석(WGS)을 통해 오작동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체내 투여 시 발생하는 면역 반응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판저가 진핵생물에서 유래했다고는 하지만, 곰팡이나 조류의 단백질은 인간 면역계에 명백한 외부 이물질입니다. 환자의 혈류나 조직에 직접 투여했을 때 효소를 무력화하는 중화 항체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혹은 세포 독성 면역 세포가 활성화되어 유전자가 교정된 환자의 세포를 공격해 파괴할 위험도 존재합니다.

핵심

야생형 판저의 낮은 절단 활성을 끌어올리는 단백질 개량과 함께 비표적 절단 및 체내 면역 반응에 대한 정밀한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동물 모델을 이용한 장기적인 생체 안전성 평가와 면역 반응 검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임상 적용을 지나치게 낙관하기보다는 이러한 기술적 병목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차분한 연구가 요구됩니다. 판저의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엄격한 과학적 검증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치료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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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정리